46강
발밑에 시한폭탄이 묻혀있다면?
선택의 여지가 있나요?
이판사판 거품 물고 뛰여가서 동네방네 소문내고 경찰에 신고하고
떡실신 하는 일밖에?
아참 남편 손잡고 뛰여야지.거품물고 뻗어버리면 뒷감당 시키게..
그 외에는 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요?
상상력 부재.ㅎㅎ
대신 외간장에 대한 추억한토막.
국민학교때 반에 지서장 딸이 전학왔다.
아마도 교회를 다녔던 듯
그렇지 않으면 귀한 집 외동 딸과 열명중 열번째로 태어난 촌년이 도저히 가까워 질 수 없는 여건였으니까.
이름도 기억난다 권성자.
난 집이 5리나 되는 중가동 촌이고 성자는
병영 지서에 딸린 사택에 살았다
한번 그집에가서 자게 됬는데
오매? 넓고 깨끗한 방에서는 깨끗한 유자 냄새같기도 아닌것같기도
암튼 첨 맡아보는 고급한 냄새에다
더 기막힌 것은 언니 오빠 엄니 나 넷이 자는 우리집
큰방의 두배는 되는 드넓은 방을 저 혼자 잔다는것이었다
식모가 친절하게 많이 먹으라며 가져다준 밥상은
하얀 쌀밥은 물론 귀하디 귀한 멸치볶음에 소고기 장조림.
그중에도 장은 장인데 장처럼 짜지도 않고
감칠맛 나는것이 장조림이 따로 나온걸 보면 장조림 국물도
아니고 요상한 검붉은 물이 냄새도 좋고 달콤 짭짜름...
도대체 정체를 알수없는 장물였다.
그뒤로 항상 의문으로 남았다가
서울 올라와서 동네 간장공장에 간장 병들고 500원 어치 사다
먹어보고야 십년 넘게 품고 있던 의문이 풀렸었다.
그녀는 권색 구레빠 반코트를 입고 다니며 (나는 솜저고리에 검은 광목치마)
고무줄 놀이라도 할라치면 거침없이
벗어서 내등에다 처억 걸쳐주곤 했었다.
지금쯤 어디서 늙어가고 있는지.만나보고 싶다.
45강 내가다닌 학교
학교이며 설립자 는 돌아가신 내 작은 오빠다.
‘설성의 역사를 품에 안고서~~~로 시작되는 교가의 작사자 또한
맹원재 내 작은 오빠다.
작은 오빠는 집안형편으로 강진이나 장흥 혹은 목포 중학교로
유학 할수 없는 농촌 아이들을 위해 독지가들을 찾아다니며
자금을 마련해 작은 천막 중학교를 세우고 초창기 교장겸 선생을 하셨다.
그때의 학생들은 중학교라는 발판으로 인해 더높은 교육의 기회를 얻을수 있었다
오빠가 병석에 눕고 나서 어른들로부터 자주들었던 단어는
‘인가’였다. 결국 인가가 났다는 소식을 들은 후
30대 초반에 눈을 감으셨다.
병영중학교는 병영에서 작천쪽으로 조금 나가, 신작로와 갱변(냇가를 그렇게 불렀다)
사이에 넓은 운동장을 안고 앉은 두동의 단층 건물로, 조그만 학교였다.
나는 아버지 가 안계신 집안에서 큰오빠의 독단적 경재 운영 과
막둥이 교육에 대한 의지부족으로 초등학교 졸업후
진학은 포기한 상태였다.
그러다 사고뭉치 막내, 고장 (뭐든 만저서 고장낸다고 붙여진별명) 오빠가
돼지 새끼 팔아 오라는 심부름을 가서 판돈을 몽땅 들고 서울로 튀어
어느 세탁소(난 그때 세탁소라는 단어를 첨 접했다) 에 취직,
막둥이 중학교 보내라고 입학금을 보내줘서야
중학생이 될수 있었다.국민학교 졸업 2년 후였다.
시험은 면접 시험 으로, ‘국민의 삼대 의무’와 그 비슷 한 몇가지 질문
으로 치뤘는데 난 하나도 못마쳤다.
면접관 은 고개를 갸웃뚱하면서 종이에
권총 한자루 를 그려 넣었다.
난 영어로 빵점은 권총처럼 쓰느구나 생각했다.
마지막 으로 "논도 없는데 학비를 어떻게 낼거냐"고 물었다.
난 오빠가 서울서 세탁소를 경영(경영 이란 단어를 내가 쓴데 대해서
스스로 자랑스러웠음)한다고 뻥을 치기도 했다.
그때의 면접 선생님 이름도 기억난다. ‘노형태 선생님’
내가 8회 졸업이니까 인가 난지가 5년 된 그리고 한 학년에 한반(남학생 40여명 여학생
20명안팍)으로 달랑 삼학년 삼학급이 전부였다.
교과서 값이 큰 부담여서 선배로부터 샀다가 또 후배에 팔아
너덜너덜 할 때 까지 내려받아 공부했다.
지금도 뚜렷이 기억나는 책 표지의 ‘마상환’ 이란 이름이 생각난다.
누군가를 통해서 샀는데 그 주인공이 궁금해 2학년 남학생들 명찰을
힐긋힐긋 처다보기도 했었다.
1학년 때는 역사 선생님은 지리까지,
국어 선생님이 도덕까지 그렇게 한분이 두과목을 담당했다가
모르는 사이 증원이 됬던것같다.
특히 기억에 남는 2학년때 담임 이홍화 선생님은
미남 총각에 별명이 ‘송아지’로 순하고 어린 생물 담당 였는데 입대 통지서가 나오자
통지서를 손에 쥐고 찔끔거리며 운동장 끝에서 서성여서
우리들이 걱정하며 따라다녔었다.
그랬던 그분이 바로 현재 거액의 교비횡령 으로 악명을 떨친 서남대 설립자
이홍화 로 변산하리라 누가 상상 했겠는가.
여름 방학중 8월 15일과 개학하루 전날은 전교생 호미를 지참 하고
등교 해서 운동장에 무성한 풀을 뽑았던 추억,
겨울 눈오는 날엔 학생들과 선생님 몇 명이 운동장에서 눈싸움을 했던 추억,
작난치다 들켜 교무실에 불려가서 진심으로 반성하며 펑펑 울었던 추억,
초등학교 졸업 2년동안 찌그러져 절망속에서 일만 하다
처음 교복입고 등교하던 감회.
그러나 등교하면 2학년 동생들과 같이 놀아야 하는 창피함
반대로 동네 와서는 중학생 된 것이 자랑스러웠던 기억‘
삼학년때 4.19 가 터져 ‘어디학교 에서는
교장을 쫒아냈다 선생을 쫒아냈다‘ 라는 소문속에
남학생들 몆명이 우리교장도 쫒아내자고 대의원 회의를
소집해 3학년 여자 대의원 였던 내가 열변을 토하며 말렸던
일, 졸업후 더 이상 학생일수 없다는 아쉬움에
밤마다 벼개가 푹 젓도록 울었던 가슴아픈 기억.
꼭꼭 감춰져서 잊은줄 알았던 값진 추억들을
글쓰기 공부를 통해서 다시한번 꺼내보며 감회에 젖어본다.
졸업하고 가장 슬펐던일은 ‘반에서 최고점수는 여학생이라며
남학생들 분발 하라‘던 선생님의 칭찬을 더 이상 들을수 없다는것이였다
참고로 병영중학교는 병영상고 까지 증설 인재양성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농촌인구 감소로 학생이 줄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글을 다시 읽어보니 눈물이 난다.
44강 친척집 소개하기.
나이가 남편보다 11살 위의 이복 작은 아버님 댁은 강원도 양양 청곡리다.
양양 읍에서 2k 떨어진 남편의 고향이기도 하다.
작은 아버님과 어머님 두분이 토닥토닥 싸우며 부지런히 농사지으며 사신다.
마당 한쪽엔 항상 경운기가 있고 그옆엔 조그만 개가 줄에 매여있다.
가을철엔 마당가득 멍석위에 벼들이 혹은 고추가 햇볕에 마르고 있다.
처마 밑에는 비슷한 크기로 쪼개진 나무 장작이 가지런히
항상 고만큼 쌓여있다.
그옆으로 커다란 아궁이가 큰입을 벌리고 크나큰 무쇠솥을 떠받히고 있다
난 장작을 볼때마다 어릴 때 생각이 난다.
그시절엔 부잣집에만 질좋은 장작을 쌓아놓고 쓸수있었다.
장장불은 불쌀도 쎄고 타고남은 숫은 하로에 담아 방안을 또한번 따듯하게 해준다
무엇보다 추운겨울 아랫목과 화롯불 옆은 항상 경쟁이 치열했다.
마당앞은 제법 넓은 찻길이다.
작은 아버님은 귀가 많이 막히셨다.
자기말만 하시고 남의 말은 들으려 안하신다.
내눈엔 고래고래 소리만 질러대는 귀여운 독재자로 보인다.
작은 어머님은 농사일 사이사이로 알바를 잘하신다.
양양군에서 행사라도 있을때면 항상 돈을 벌러 나가신다.
가을에 송이축제 나 연어축제가 열리면 어김없이
나가서 일당 오만원을 벌어서 으기양양 돌아 오신다.
송이가 흉년일땐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송이를 받아
야산 여기저기에 살아 있는 듯이 숨겨 놓으시는 작업을,
연어축제때는 주변 정리 청소를, 하시고 받는 돈이다.
현장까지는 용감하게 자전거타고 가신다.
늙었지만 건강하고 씩씩하게 사시는 두분이 보기에 좋다.
에피소드하나
작년에 갔을 때 작은 아버지가 있는힘 다바친 큰소리로 하신말씀.
“아~~ 느 작은 어머이가? 술먹었다고 마당에서 나를 자빠뜨리고 내 배위에 올라타서는
막대기로 나를 팼다니까네? 그러다 저쪽에서 차가 오니까 도망갔어
차가 안왔음 더팼을거라니?“
작은 어머니 말씀은
“아 저녁에 들왓더니 느 작은 아부지가 술을 잡숫고 와서는
마굿간에 있는 소를 막대기로 요래 요래 쿡쿡 찔르고 있잖너?
그래서 어떻게? 소리질러도 듣지도 못하는걸
급하게 막대기를 뺏다가 고만 그렇게 됬지.
그러다 저쪽에서 차 불빛이 비추길래 남사스러 냅다 방으로 도망쳤지머“
두분 사이에는 항상 이렇게 크고작은 사건들이 일어난다.
남편 말로는 작은 아버지는 ‘수운 뻥쟁이’ 시란다.
올해도 가을되면 우린 또 뻥쟁이 작은 아버지댁도 들릴겸
강원도로 여행 갈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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