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글짓기

7월 24일 41강 비오는날7월 25일 42강 오프모임 후기.

와인세대(맹언니) 2015. 7. 24. 20:33

네 번째 오프 모임 후기.

8시 40분에 이미 갈준비가 완료됬다.

9시까지의 짜투리 시간엔 신문을 보며 기다려 정각9시 집에서 나왔다

금방 버스가 와서 기분좋게 탔다.

내 맞은편 좌석 젊은 여자승객이 통화를 계속했다.

끝났나 싶음 다른곳에 또걸었고 반복되는 그행동은 끝날것같지 않았다.

‘나에겐 저소리 안들을 권리가 있고 동시에 조금은 참아내야 하는 의무도

있다'생각, 의무부터 이행하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그녀는 나에게 무제한 의 의무를 요구했다.

드디여 난 의무 끝내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부드럽고 조용한 톤과 미소로 “차안에서 통화를 참 많이 하시네요?”

했더니 전화기를 귀에 달고 머리를 끄떡 "미안합니다" 작게 말했다.

그때부터 나의 거짓웃음을 싹 빠꿔서 먼자석으로 옮겨 앉았다.

그렇게 40분만에 문화센타 도착했다.

또 20분이나 짜투리시간이 나서 입구에 비치된 책 한권 빼 들고 교실로 갔다

금방 선생님이 오셨다 그리고 남정자님 림쥬님 선곤님 호철님 순서로...

책은 못읽고 반납했다.

 

첫 번째 순서는 2주동안 어떻게 보냈는지 애기하기였다.

내가 한 독사 애기밖에 생각 안난다.

메모하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것 이순간 확실히 느끼고 있다.

담엔 꼭 메모해서 낙제점은 면해봐야 하겠다.

그런데 토론하면서 메모하기는 나에겐 참 어렵다.

원래가 멀티테스킹이 안되기 때문이다.

담시간은 내글 낭독하기.

이것 또한 내글에 대한것만 기억난다.

진부한 설명대신 독자에게 추론의 여지를 남기려는 의지가 너무강해

너무 멀리 튀여나갔다는것 독자를 헷갈리게 만들었다는 것

간단한 단어 하나 첨부함으로 해결될수 있다는것들을 지도 받았다.

예를 들어

이사람 애기하다 부인이라 하면 당연히 그의 부인이라 추론

하리라 그래서 은근히 추론의 여지를 남겼다는 뿌듯함 도 있었는데

“실패다.”

결국 호철님 글 따라하기 를 해본건데 들켰다.

들켰는데 유쾌했다.

 

담은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감상후기시간.

각자 느낀점과 점수주기.

나는 제일 박한 2.5를 줬다.

기록으로 남긴일 자체는 높이 평가 했으나

내가 생각한 영화적인 가치를 나는 낮게 본거다.

내가 스펙타클 영화=좋은영화 라는 공식에 길들어서인지 모르겠다

비비안 마이어 에 대해서도

흔히 천재들에게서 볼 수 있는 괴짜기질 특히 사진에 대한

본능적인 천재성을 가졌을뿐

내면에 자신만의 철학이나 예술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고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사진뿐 아니라 모든걸 수집하는 수집광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품 발표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무관심였다고 평했다.

난 예술을 보는 안목이 없다.그래서 낮은 안목을 솔직히

발표했다. 볼줄 아는 사람 흉내를 낼수는 없지않은가.

어찌됬던 나에겐 자랑스런 시간였다.

그래서 오다가 옆집 아저씨를 만났는데 자랑했다.

나더러 “30대처럼 사시네요” 라고 해서 한번더 행복했다.

그러다 문득 '나 이러다 정말 삼십대로 돌아가는건 아닐까?

울 새끼들 복장터지게 생겼네?라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41강 비오는날에 대해서..

어려서 내가 살던 동네에는 가운데로 큰논이 하나 있었다.

논 저쪽에서 물길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논 한쪽으로 지름길이 나있었다.

여름철 큰비가 오면 논에 물이 넘쳤다.

나는 쪽물들인 삼배 통치마를 돌돌 말아 앞에다 질끈 묶고는

넘실대는 시뻘건 흙탕물속에 잠긴 그길을 친구들과 경쟁하며

더듬더듬 빗속에서 걸어다니며 놀았다.

사람들 발에 다져질대로 다져진 진흙길은 물속에서 말랑말랑 감촉이 좋았다.

둘이 지나가면 한사람이 비켜줘야 하는 넓이의 이길을

옆 논구렁이로 빧지 않고 다녀야 하는 걷기놀이는 무척 재미 있었다

그러다 언니들 한테 들키면 가차없이 불려가서 욕먹고 쥐어박혀야 했다 

 

우리동네 아랫쪽 먼발치에는 넓은 냇가가 있고 그 아래에는 발천이라는 동네가 있었다.

큰비가 오면 냇가물이 넘쳐나기전에 윗동네로 건너 올라와야 했다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기위해 소를 앞세워 소꼬리를 잡고 건너 왔다고

해서 발천 소꼬랑지 라고 불렀다.

그동네 아이들은 그소리를 무척 싫어 했다.

큰비가 그치지 않으면 어른들은 동네 어귀에 나와서 발천사람들의

동태를 살피곤 했지만 내눈으로 소꼬랑지 붙잡고 줄줄이

내를 건너는 장면은 목격하지 못했다.

 

나에게는 오빠가 다섯분이다.

그중 동경에서 고학으로 공부하신 작은 오빠는

고향에 내려와 중학교를 설립하고는 폐병을 얻어 집에서

치료하고 계셨고 무척 자상해서 나에겐 아버지 같았다.

천둥소리와 함께 비가오면 나는 궁금했다

그래서 하늘에서 먼일이 벌어지고 있는거냐고 물었다

하나님이 천사들이 끄는 커다란 꽃가마를 타고

나들이 가시는데 그 바퀴 굴러가는 소리라고 설명해주셨다.

나는 꽃가마와 하나님과 천사와 큰 바퀴를 머릿속에 그려보며

그럴만 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