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모음

내 가정에 평화를 선사한 세글자 급 발 진

와인세대(맹언니) 2024. 4. 6. 09:44

 

 

 

우린 1971년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사내 연에 3년 만에  결혼했다.
결혼과 동시 남편의 욱질이  튀어 나오더니  25 세에 홀로 된 젊은 시어머니의 전폭적인 비호속에 거침없이 정주행 현재까지 주욱  수시로 

작동돼고 있다

평상시 자상하고   바다같이 너그럽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급발동.
 

나는 놀래서  욱으로 대응
두 욱이 부딪히니 아무 말 대잔치로 발전하고
아무 말이 건너가면 더쎈 아무 말이 돌아오고. 또 더 쎄게 넘어 가고 또 더더 쎄게 돌아 오고 이렇게 지칠 때까지 주고받다가 힘이 빠지면  냉전 기간

똑같은  패턴으로  발생해서 폭발하고 또 발생 그리고 폭발! 
그리고 나면 냉전 기간!
이 사이클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차라리 주의보를 예고해 주던지!
"오늘은 거실 쪽에서 혹은 안방 쪽에서 무슨  종류의 발언에 폭발할 수 있으니   주의하시라
라고 예보라도 있어야

뭐라도 해서 또는 안해서 예방 련만?
 
하지만 주변에서는 본받을만한 잉꼬부부로 알려져 있어서 같은 래인의 어느 대학생은 엄마 아빠 한테 "늙으면 꼭 21층 할머니 할아버지 처럼 사시 라" 한다고 그 엄마가 나에게 말한적도 있었다

왜냐하면 수시로 자전거를 싣고 전국여행을 떠나거나 집에서도 수시로 나란히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기 때문이다.


싸우고 예약된 여행 취소 한 적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과 

아침에 나갈 때는 웃으며 사이좋게 나갔다가 들어 올 때는 각자 따로 씩씩대며
들어온다는 사실을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그 대표적
잊지못할 에피소드로?

한참 싸우다  나가려고 현관문 을 열자마자 우리 현관에 귀대고 엿드던 앞집 아저씨와 마딱 뜨리고야 말았던 일이었다

둘이다 어찌나 난처했던지
지금 생각해도 웃기는 장면 이지만 나라도  많이 궁금했을것 같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생각해 보니 변함없는
이 전쟁의
과정이 어제오늘 생긴 것이 아니었다

젊어서 주말마다 테니스를 쳤는데 나갈 때는  화기애애 사이좋게 나갔다가 들어올 땐 씩씩대며 각자
 따로 따로 대문이 부서져라 꽝! 꽝!닫으며 들어올 때가 많아서 
당시 고등학생이던 딸이

"엄마는 왜 그렇게 싸우면서 아빠만 따라다녀? 

그냥  엄마 친구들이랑 따로 치면 안 돼?"라 말했었고
그럴 때마다
"그래 담주부턴 절대 가자고 해도 안가! "
라고 다짐하지만 담 주말이 되면
''우리가 언제 싸웠어?

라는듯 천연덕 스럽게 알콩달콩 둘이 나란히 라켓 메고 나가곤 했었으니?

아마도 그만큼 남편을 사랑 하고 의지 했던 것 같다.


어느날 요즘 한참 뜨고있는 책 김순옥님의 '초보 노인'
을 읽다가
"꼰대에 욱을 얹으면? 상꼰대"라는 대목을 읽고 재밌어서 남편한테 읽어주며 

"이 책 작가님 관점으로 보면 당신은 상꼰대 보다 한 급수 위  대왕 꼰대 같은데?
당신의 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폭발 수준이잖아!

라 말하며 은근히 반성을 유도해 봤으나 피식 웃는 것으로 끝났을 뿐, 바라던 효과는 없었다.

그러다 tv 어느 연예 프로에서 [급발진]
이란 단어를 접하고
"와~~~~
딱  맞는 저 단어!
급발진!
저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세상에 없다
요즘 젊은이들의  저 반짝이는 재치와 예리한  쎈스 라니?
그래!
남편의 그것은 욱이 아니었어 바로 급 발 진"  이었어!
라고 크게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금발진 관점에서 생각해 보니
"아니? 왜  거~ 하고 대~한 급발진 나님을 욱이라해?" 라며
큰 모욕감이 들었을것 만 같았다
그 이후 부터는


남편의 그것이 발동될 때마다
"급발진 하지 마세요!"라며 우아하게 넘길수 있었다

남편도 은근히 인정하는 듯 했고 무엇보다 내가 욱 으로 반응하지 않으니 급발진을  한 번으로 끝낼수 있어 소모적인 싸움을 막을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뭔가 2%
부족한듯 게운치 않은 느낌 에 좀 더 적극적인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고 멋진 아이디어가 떠올라
벽걸이 달력 뒷면에

급 발 진 절대 금지

이 표어는 2025년 3월 31일까지 .
절대 떼지 말것.
   라고  
크게 써서
남편 외출한 사이 남편방
거울 전면에 차악 붙였놨다.
솔직히.

잔잔한 호수에 또 한 번의 급발진을 초래 한건 아닌가 걱정도 되고 궁금했는데
못 봤나 싶을 만큼 무반응였다

웃던지 급발진 하던지
두 종류의 내 예상을 빗나간 반응?
이건 뭐지?
어쨌거나 목표는 달성 한것 같은데?성공?
아싸!
역시
벌써 두 달 넘게 급발진도 없었고, 그 표어도 회손 없이 무사한 것 보니 효과를 보는 듯해서 전국에  있는 급발진 피해자 후배들을 위해서 급발진 피해자 53년 차  대 선배로서 조언하기로 했다.

급발진
그것 때문에 싸우고 냉전하고 이혼하고, 그러나 '지금 말고 애들 좀 크면?'에서 이제는 

'너무 늙었으니 이혼에 앞서 분가해서 따로 살아보고!'로  53년 동안 이혼과 분가를
 수없이 반복하며 살았는데 드디어 우리에게 평화가 온 것 같다. 
아슬아슬 위태로운 평화 말고 맘 놓고 누려도 되는 확실한 평화가?
 
 믿어도 되나 의문이 들지만 그동안의 발생 빈도에 비해 두 달 남짓 불발 이면 믿어도 되지 않을 가?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암튼 손해 날것 없으니 혹여 배우자의 급발진이나 욱으로 고생하시는 분이 있다면 한번 시도해 보시라고 강추! 일단 한번 해 보시라니까요?

아마도 급발진 이란 놈은 독 하고 나쁜 놈이지만
 허약한 면도 있어서 정체가 드러나는 것만으로도 
힘을 못쓰는 알고 보면 약하디 약한 놈인것 같다.

이렇게 글로 쓰다 보니 평소의 

'남편은 욱질 가해자 나는 욱질 피해자'
라는 굳어진 생각에 살짝 의심이 생기는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