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국내 여행 매니아다.
오래전부터 자동차 뒤에 케리어를 달아 자전거를 싣고 금요일 오후에 떠나서 일요일 오후에 돌아오는 일정으로 전국을 여행했다.
봄이면 벚꽃이 만발한 벚꽃길이, 꽃이 지고 열매가 열릴 땐 쑥이 지천인 한적한 임도길이 목적지가 된다.
자전거를 타고 봄바람 휘날리며 달리면 임도길 옆 풀숲 사이로 옹기종기 쑥 가족들이
"이렇게 탐스러운데 진정 모른 척할 거요?" 라며 우리를 유혹한다.
무심히 지나치기에 우린 너무 철이 들었으므로, 가던 길 잠시 멈추고 쑥을 뜯는다.
벌써 십 년도 넘은 우리 집의 봄철 연례 행사다.
향긋한 쑥은 쑥국, 쑥밥, 쑥전, 쑥버무리로 변신해서 봄 여행의 여운을 오래오래 남겨 준다.
가을 이면 황금빛 들판과 붉게 물든 초호화 산속, 주렁주렁 밤송이가 유혹하는 임도길이 목적지가 되어 자연의 넉넉함을 만끽한다.
반들반들 섹시한 자태로 밤나무 아래서 뒹굴고 있는 버얼건 알밤을 만날 때는 말 그대로 황홀경
이다.
겨울은 또 겨울스럽게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과 그 아래 눈 쌓인 백색의 산 풍경도 놓칠수 없는 절경이다.이 모든 풍요의 선물은 우리나라이기에 가능하리라.
남편의 퇴직과 동시, 우리 인생의 해피한 노년을 위해 퇴직금을 뚝 짤라 자동차도 바꾸고 자전거도 노인에 맞는 전기 자전거로 바꿔서 본격적으로 전국 여행에 돌입했다.
여행의 단계는?
1. 목적지 정하기
2.목적지 부근 자연휴양림 찾아 예약하기
3. 숙소 부근 임도길이나 도로 탐색 그리고 주변경치 조사하기
4. 그 지방의 관광지랑 전통 5일장 알아보기 이다.
알아 낸 5일장으로는 이른 봄부터 이른 여름까지 차례차례 종류별로 산나물이 넘처나는 정선 오일장이 좋고 사시사철 가지가지의 생선이랑 잡다한 희귀한 먹거리 들이 풍성한 광천 5일장, 가을 김장철엔 강화도 5일 난장, 그 외에도 깔끔하게 정돈 된 전통장 들이 지방마다 각자 다른 특색을 갖추고 분포되어 있어 여행의 묘미를 더해준다.
전국 곳곳을 차로 또는 자전거로 달리다 보면 우리나라의 산과 천이 얼마나 수려한지
산새들의 노래소리가 얼마나 다양하고 고운지, 인공폭포 자연폭포 실폭포 넓고 짧은 난쟁이 폭포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우렁찬지 대한민국 만의 아름다움을 실감할 수가 있다.
숫돌에 자알 간 잘 드는 칼로 한 번에 싹둑 자른 듯 우뚝 선 절벽과 바로 아래서 그 모든 삼라만상을 온몸에 품고 흐르는 넓은 개울의 어울림 같은 자연의 조화도 감상할 수가 있다.
그 둘은 언제나 사이좋게 나란하게 조잘조잘 우렁우렁 끝도 없이 흘러간다.
가는 곳마다
전라도가
경상도가
충청도가
강원도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경치 좋은 곳으로 수시로 바뀌곤 한다.
그러다 우연히 산림청 주관 국립자연휴양림의 주중 스탬프 투어(금년 들어 없어짐)를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확실한 목적지가 정해저서 좀 더 편하게 적극적인 여행을 하게 됐다.
각 지방별로 부근의 자연휴양림을 두 곳 세 곳을 묶어 하룻밤 혹은 이틀밤씩 묵으며 스탬프를 받고 국립 총 44개 중 한 칸씩 두 칸씩 채워질 때마다 어린아이 처럼 좋아하고, 그대로 흘려보내면 기억에서 깨끗이 사라질게 뻔해서 블로그에 설명을 곁들인 사진을 남기고 하다 보니 휴양림의 주변 환경이나 관리상태까지 꼼꼼히 체크 평가 하게 되었고 우연히 좋은 평가를 받은 휴양림에서는 입실 때 이름 보고 오랜만에 오셨다며 블로그 글 읽었노라고 잘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까지 받게 돼서 보람도 느끼게 된다.
가끔
자전거 타고 나오면 불러 세워 "누구세요?" 라는 매표소 직원의 본의 아닌 신원 조회를 당하기도 하는데 방금 입실한 두 노인임을 밝히면 살짝 놀라곤 한다.
하긴
나도 거울 보면 가끔 "왜 내가 이렇게 됐지? 누가 나를 이렇게 짓이겨 놓은 거지?" 라고 투덜 댈 때가 있으니까.
그러나 거울 속 낯익은 노인은 이제부턴 우리의 영원한 긴 여행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해 준다.
거울이 없었다면?
우린 아마 영원토록 자전거 타며 살거라 믿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약속했다.
"우리 이렇게 조금만 더 살다가 어느 순간 며칠만 앓다가 저항 말고 조용히 떠나자
또한 둘이 같이 갈 수 없음도 인정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긴 시간들 중 80년이나
잘 사용했으니 억울해 하거나 요란 떨지 말고 자연이 정해준 순서 대로 담담하게 떠나고 담담하게 보내주자 " 라고 약속하고 살고 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엄청 사이좋은 잉꼬부부 같지만
우리 사이는 남편의 욱질로 인한 부부싸움이 수시로 일어나는 사이다.
남편이 욱하면 왜 말로 하지 욱 하냐고 내가 욱하고 그게 왜 욱이냐고 남편이 욱하고
그게 욱이 아니면 뭐가 욱이냐고 내가 또 욱하고...
처음 휴양림의 존재를 알았을 때의 일이다.
남편의 욱 으로 크게 싸우고 냉전 기간인데 하필 처음으로 오서산 자연 휴양림 예약이 된 기간이었다. 둘다 서로에게 '증말 가기 싫지만 손해 보기 아까워서 가준다' 는 폼으로 자전거랑 장비 랑 2박3일 분 짐 다 싣고 두 시간 동안 묵언 상태로 보령 오서산 입구까지 갔는데?
오~마~이! 입구의 맑고 찰랑대는 호수를 낀 솔밭 공원이 얼마나 물 맑고 아름다운지.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 했다.안으로 들어갈수록 어머나?어머나?
저 깊은 계곡 좀 봐! 저 울창한 숲은 어떻고?이 물소리는?
나도 몰래 전쟁 중임을 망각하고 감탄사를 연발했음은 물론 자전거를 타고 산길을 내려올 때는
"이렇게 좋은 곳을 어떻게 알아냈느냐?" 며 칭찬까지 하고야 말았으니,
바라던 사과는 커녕 도를 넘은 우쭐함까지 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 마저도 봐줄 만한 애교로 보였고 어찌나 똑똑하게 보이는지.갈 때는 어둡던 세상이 돌아올 때는 환한 세상으로 변해있었다
이렇게 여행은 우리 생활의 활력소 가 되고 건강의 근원이 되고있다.
아쉬운 건 딱 하나
북한 여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남쪽 땅은 다 구경했으니 이젠 더 넓게 이북까지 가보고 싶은데
자동차로 몇 시간이면 갈 수 있는 내 나라를 왜 못가야 하는지
일본이나 중국 가듯 여권으로 가고 오고 할 수 있다면 우린 버얼써 함경도 까지 몆 번은 갔을 것이다.
여보쇼~~~
대통령님!
북한에 경치 좋은 곳이 그렇게 많다는데 우리 언제쯤 구경할 수 있겠오?
내 나이 팔십 하난데
거 좀 서둘러 서로 구경 다니며 살 수 있게 해 주면 안 되겠오?
하하하!
내가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꼭 부탁드릴 생각이다
오늘밤도 담에 또 그 다음에 또 그그 다음에 갈 곳을 궁리하며 잠들 것 같다.
왜냐면 여행지를 선택하는 일은 계절과 잘 맞아야 가성비가 높아지기에
요거조거 잘따져야 할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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